진흥왕에 대한 주관적인 재평가진흥왕에 대한 주관적인 재평가

Posted at 2015. 1. 5. 20:29 | Posted in 역사 비평하기
반응형

 

삼국통일을 위한 전투는 무열왕에서 문무왕까지

계속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결국 문무왕이 삼국통일을 이룩하였다고 하는데,

이 당시에는 김유신 장군도 나이가 아주 많아서

출정하기도 힘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삼국통일을 이룩하기 전에

신라가 삼국에서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진흥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진흥왕 때에 세웠던 순수비만 따져봐도

그 당시 확장된 신라의 영토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라는 진흥왕 이후에 진덕여왕의 시기까지는

오히려 고구려와 백제의 연합군에 의하여

나라의 존망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흐름이 달라 진것이

김춘추(무열왕)가 왕으로 등극한 이후라고 합니다.

이 당시에는 백제는 의자왕이 집권한 이후에

이전의 무왕시절의 강성함을 잃고 서서히 저물어가는 나라로

변모하고 말았습니다.

백제는 성왕에 이르러서 국호를 남부여라고 일컫으면서

새로운 도약을 외쳤습니다.

당시에 신라의 왕은 진흥왕이었고

백제와 신라의 동맹국은 힘을 합쳐서 한강유역을 점령해서

이 부분을 반으로 나누기까지 하는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지만,

신라는 이를 배신하여 백제를 침공하여 한강유역을 독차지하였고,

성왕까지 죽이는 약간은 의리가 없는(?) 행위를 하였습니다.

 

이 부분은 진흥왕의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실리를 위하여 의리도 져버릴 수 있는 약간은 차가운 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략 150년 이전으로 돌아가보면,

당시에 백제와 왜의 연합군이 신라를 침공했고,

이를 광개토대왕이 5만 병력을 보내서 도왔다고 했습니다.

 

비록 장수왕 이후에 고구려는 남하정책으로

백제와 신라를 위협했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던 고구려의 은공을 잃고

많은 영토를 침략한 것은 약간의 의리가 없는 부분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진흥왕이 없었다면 삼국통일에 대한 야심은 꿈도 꾸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진흥왕이 백제와 고구려를 침공하여

광대한 영토를 확장하면서 얻었던 자심감과 경력 등은

후대의 왕들에게도 본받아야 할 만한 부분이 되었고,

결국 진흥왕이 완벽하게 이루지 못했던 부분을

김춘추와 김유신이 완성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전체적으로 평가해보자면,

진흥왕은 용기가 있었고, 의지가 아주 강했던 왕인듯 합니다.

그런 반면에 목적을 위하여 가끔씩은 배신을 할 수도 있는

철저하게 아주 실리적이고 현명했던 왕이었던 것으로 느껴집니다.

 

저작권 : 이 글은 본인이 직접 비평한 글입니다.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