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유방을 보면 과거 정치의 잔혹사를 알 수 있다.초한지 유방을 보면 과거 정치의 잔혹사를 알 수 있다.

Posted at 2017. 4. 17. 19:07 | Posted in 역사 비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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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유방을 보면 과거 정치의 잔혹사를 알 수 있다.

 

항우가 장안을 친 후에 유방을 죽일 수 있었으나 그는 자신과 함께 했던 동료라는 명목으로 촉왕으로 보냅니다. 당시 유방의 입장으로서는 촉으로 쫓긴다는 표현을 했지만, 실질적으로 중국의 크다란 군 중에서 하나를 그에게 내준것입니다. 게다가 같이 진을 친 업장에서 제후의 벼슬을 내려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죽은 군의 제후로 만족할 인물이 아니었고, 그를 죽이지 않았던 항우를 결국 이겨내고 몰아내게 됩니다.

 

1. 그가 잔혹했던 이유는?

 

항우를 치고 전국을 통일했던 그는 공신들에게 각지의 제후로 보낼 계획을 세웁니다.

 

통일과정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한신을 불렀을 때는 항우보다 세력이 강해진 상태였었고, 한신이 자신보다 세력이 강해진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자신의 최고 공신이어야 할 인물을 가장 먼저 제거하게 됩니다. 그리고 통일을 이룬 후에도 마땅히 높은 벼슬을 내려야 할 대신들을 한명씩 내칩니다.

 

그중 번쾌도 죽이려고 계획을 세웠으나 유방이 먼저 죽어 공신 중에서도 목숨을 부지한 몇 없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장량은 통일 후에 정치에 뜻이 없음을 밝히고 산으로 들어갔기에 참담한 죽음은 면할 수 있었습니다.

 

공신들을 모두 죽인 후에 그는 각지에 자신의 친족인 유씨를 제후로 보내게 됩니다. 결국 그들이 죽게 된 이유는 황제의 불안감과 앞으로 자신의 자리를 조금 더 안정감있게 이끌어 가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그 당시는 법이나 질서가 아직 많이 부족했던 시기였으므로 왕이 각지의 제후를 다스릴 만한 방법으로 친족이 가장 안전하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2. 송나라 이전까지는 이런 잔혹사가 계속 되었다.

 

송나라의 유교적 정치질서는 고려나 조선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전국시대나 한나라, 당나라를 통틀어봐도 중국의 역사는 황제의 자리를 노리기 위한 온갓 피를 보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황제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동생이나 다른 왕자들에게 죽음을 당하고 또 다른 황제도 그와 비슷한 절차를 계속적으로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런 면으로 보면 송나라의 유교적 정치는 그나마 인간적이고 따뜻했다고 봐야 되겠죠. 이것은 법도가 충분했으나 문제점은 지나치게 과거에 얽매였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 성리학으로 인해서 답답했던 모습을 많이 보였으나, 그래도 결국은 이런 제도가 나타남으로서 정치적으로 한층 성숙해진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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