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사도세자 복수는 어떻게 되었을까?정조의 사도세자 복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Posted at 2015. 10. 19. 19:10 | Posted in 역사 비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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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사도세자 복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조는 조선의 위대한 왕 중의 한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그의 삶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불행의 시작은 바로 아버지였던 사도세자의 죽음부터입니다. 부친이 돌아가시고 난후에 그가 왕이 되는 과정은 노론벽파세력과의 소리없는 전쟁이 진행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으로 정조 암살계획이 있었다는 설이 나오기도 합니다.

 

 

 사도세자의 죽음

 

그의 부친은 노론 벽파와 정순왕후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정순왕후는 영조의 두번째 왕비로서 15세의 나이로 이미 60대였던 영조와 혼례식을 올리게 됩니다.

 

정순왕후는 이후에 노론벽파 세력의 우두머리의 위치에 있었는데, 당시 그들과 다른 정치적인 성향을 가진 소론에 결탁한 사도세자가 내키지 않았으며, 영조와의 관계도 좋지않아 이를 이용하여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닥친 궁의 소용돌이

 

그의 부친이 죽은 것은 그에게도 큰 위협적인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그것은 당시 부친을 죽음으로 몰았던 노론벽파는 정조가 왕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죠. 혹시라도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게 된다면, 궁권 내에 있는 많은 노론세력들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에 의하여 오히려 고통을 당한 것은 정조였습니다. 사사건건 그가 왕이 되는 것을 방해하려고 했으며, 이에 의하여 왕자였으나 왕자같지 않은 그의 삶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 그의 복수를 대신한 홍국영

그가 왕위에 오르는데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이는 다름아닌 홍국영이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같은 길을 걷게 되었으며, 왕이 된 후에도 그들의 정책을 계속적으로 방해한 세력이 노론벽파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부친을 죽음에 몰아넣었던 그 인물들이 중심에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부친에 대한 원한을 갚아야 했으나 노론벽파에 비하여 정치적인힘이 없었던 그들은 비록 노론벽파가 미웠지만 힘으로 억누르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조는 홍국영은 숙위소의 대장으로 임명하고 그와의 대면을 위해서는 반드시 홍국영을 거쳐서 소지한 물건 중에 불순물이 있는 지의 검사 후에야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그의 부친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게 한 주도세력의 일부를 숙청하고 정계에서 내몰도록 한 가장 큰 힘아 되어준 이가 바로 홍국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복수는 말 그대로 전체 중에서 일부만 시행했습니다. 특히 그중에서 부친을 가장 괴롭혔던 정순왕후에 대한 복수는 하지 못했고, 그가 죽은 후에는 오히려 정순왕후가 시파세력을 몰아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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