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의 십만양병설을 받아들였다면 임진왜란은 어떻게 되었을까?이이의 십만양병설을 받아들였다면 임진왜란은 어떻게 되었을까?

Posted at 2015. 10. 16. 21:12 | Posted in 역사 비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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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의 십만양병설을 받아들였다면 임진왜란은 어떻게 되었을까?

 

선조시대에 이율곡 선생이 남긴 십만양병설을 조정에서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지금까지도 있습니다.

 

이율곡은 일본의 당시에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고,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면서 조만간에 있을 큰 변란을 막아보고자 십만의 대군을 양성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꿈도 야망도 없으며 귀까지 얇았던 선조는 대신들의 달콤한 말에 속아서 그러한 충신의 말을 놓치는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훗날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에 아마도 선조는 그때 그 말을 듣지 않았음을 뼈저리게 후회를 했을 지 모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을 통일시킨 후에 국내적으로 어지러운 상황을 외부로 돌리기 위하여

많은 병력을 이끌고 조선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때 일본은 조선을 먼저 친 후에 명나라까지 정벌해보겠다는 엄청난 야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전 병력은 거의 28만 정도였으며, 조선을 치기 위하여 건너온 출전병력은 17만명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조선의 병력은 8만이었으니...... 병력도 밀리고 무기에서도 한쪽에서는 활을 사용하는데 비하여 일본군은 조총을 사용했으니 상대하기가 더욱 어려웠겠죠. 전체적인 무기의 질은 조선이 앞섰다는 말도 있으나 뒤지는 부분도 꽤 있는듯 합니다.

 

게다가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도망만 친 관군이 거의 절반이 넘었다고 하니 일본군들은 조선에 출전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양까지 치게 됩니다.

 

 

만약에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받아들였다면? 8만 + 10만 = 18만 병력

일본군의 17만보다 1만이 앞서네요. 게다가 적군은 성을 쳐야 하는 불리함이 있으므로 거의 비슷한 전세에서는 수비하는 쪽이 유리한 것이 고전의 전투였었죠.

 

나중에 의병이 일어난 후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병력을 보강했다고 하는데, 굳이 의병을 제외하고 관군의 병력으로도 일본군을 박살내는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네요.

 

그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군을 다 데리고 오면 안되냐고 할 수도 있겠죠. 이제 막 천하를 통일한 상황에서 전군을 해외로 유출시키면, 반란군에 의해서 왜국의 조정이 무너질 수도 있으므로

결국은 10만 정도의 병력은 일본에 둘 수 밖에 었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결론은 이이의 말을 받아들였다면, 왜국은 조선을 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며, 만약에 공격을 했다고 할지라도 거의 조선의 승전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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