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부인 정순왕후는 어떤 사람이었나?영조 부인 정순왕후는 어떤 사람이었나?

Posted at 2015. 10. 31. 11:07 | Posted in 역사 비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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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부인 정순왕후는 어떤 사람이었나?

 

영조에게는 두명의 중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두명의 여인을 동시에 사랑했던 것은 아니고

그만큼 오래 살았기 때문에 중전 간택을 두번 했던 것이죠. 첫번째 부인은 정성왕후였고 두번째 부인인 정순왕후는 15세 떄에 66세 였던 영조와 혼례식을 맺고 중전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오히려 영조의 아들이었던 사도세자나 그의 처인 혜경궁 홍씨보다 나이가 더 어렸던 상황이었습니다.

 

 

사도세자와의 악연

 

영조의 나이가 60대 중반으로 접어들었을 떄 그녀를 중전으로 간택한 것은 나이대를 감안했을 때

커다란 놀라움을 안겨 줄만한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의 나이로 봐서 이미 인생으로서 말년에 해당했는데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왕비가 자신의 막중한 임무를 과연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결단을 내렸는지 지금으로서도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것은 이후에 그녀의 행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너무 똑똑하고 강인하여 남과 타협을 하지 못하는 면에서 단점을 찾을 수 있겠습니다.

 

그녀는 정성왕후의 아들이었던 사도세자와 그의 부인보다 오히려 나이대가 어렸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는 묘한 신경전이 있었습니다. 사도세자의 입장에서도 자신보다 10살이나 어린 새어머니를 과연 인정해주고 스스로를 낮출 수 있었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노론벽파세력과 규합하여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정조와의 정쟁

 

그후에 그녀는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와 대립적인 입장이었고, 정조가 왕이 된 이후에도 노론벽파 세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관철시키고자 하였으며, 과거 사건으로 인한 불상사를 당하지 않으려고 크게 애를 썼습니다.

 

결국 정조가 강해지면 자신이 위험에 처해질 수 있었다는 논리로 해석이 가능하겠군요. 정조가 죽은 후에는 그를 따랐던 일당들을 모두 몰아내고 자신의 아들이었던 순조를 왕위에 오르게 합니다.

 

수렴청정과 그 이후

 

하지만 순조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직접 정치를 하지 못했고, 그녀가 수렴청정으로 대신 정사의 일을 돌보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그녀는 왕의 대리가 아닌 자신이 왕위에 오른 사람의 권위를 누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수렴청적이었지만 스스로를 여왕임을 칭하고 신하들에게도 그녀를 대함에 있어서 왕과 같이 대할 것을 당부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아주 어린 나이에 정계에 오르기 시작하여 여자로서 왕의 모친이자 대리의 역할까지 했던

아주 화려한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수렴청정을 마치자 비극이 시작됩니다. 순조의 장인이었던 김조순은 시파의 중심 세력에 있었고, 시파는 정조를 도왔던 세력이자 정순왕후에 의하여 크게 어려움을 겪었던 세력이었습니다. 김조순 등의 세력이 확장되자 노론벽파는 조금씩 숙청되기 시작했고, 정순왕후의 인생 말년은 그렇게 초라하게 마무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인생은 도전적이고 화려했지만, 정조처럼 훌륭한 왕과 반대각을 세웠다는 점에서 조금은 아쉬움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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