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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산군의 만행과 사화 이야기 2015.11.24

연산군의 만행과 사화 이야기연산군의 만행과 사화 이야기

Posted at 2015. 11. 24. 19:40 | Posted in 역사 비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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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의 만행과 사화 이야기

 

조선시대에서 가장 이해가 안되고 괴퍅했던 왕을 꼽으로면 연산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약간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왕이 될 자격이 없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군주가 되기 위하여 누릴 수 있는 것만 생각하고, 자신이 신하나 백성들을 위해서 해줘야 할 의무를 망각한 행위는 그 어떤 이유로도 용서가 힘들 것입니다.

 

 

무오사화

 

김일손 등은 세조가 무력으로 단종의 왕위를 찬탈했다는 내용의 사초를 준비했습니다. 세조는 연산군의 할아버지가 되는 사람으로서 결국 그 내용은 성종이나 연산군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행위 되겠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그 당시를 부정하는 내용을 알리는 것은 무리가 되지 않겠으나 당시는 지극히 현실과 연관성이 높은 내용으로서, 대신들이나 국왕은 이를 가볍게 넘어갈 문제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에 성종 때에 등용된 사림의 많은 인재들이 사형이나 귀양살이를 떠나야 했고 삼사의 권한은 약화되고, 왕권은 더욱 강해진 상황으로 전환됩니다.

 

 

갑자사화

 

이것은 무오사화에 이어서 두번째로 일어나는 사림의 몰락사건입니다. 연산군은 자신의 권한을 더욱 강화시키려고 노력하였고, 그러한 힘을 바탕으로 올바른 정사를 하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방탕한 생활과 온갖 비도덕적인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자신의 모친인 폐비윤씨의 죽음이 인수대비와 일부 대신들과 관련이 있음을 알고 그에 대한 복수를 법적인 형태가 아닌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임의적으로 직접 실행하려고 했던 것이 가장 큰 실수였습니다.

 



 

궁에서의 커다란 모든 일에는 절차라는 것이 존재해야 하는데, 그는 자신의 모친에 관련된 일이라는 이유로 그러한 것들을 무시하고 왕권을 지나치게 남용한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만약 모친의 죽음에 대한 사건을 정당한 절차를 통해서 해결을 했다면, 어느 누구도 그의 행위에 대한 비판을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 외의 만행

 

군주는 신하들과 학술에 대한 토론의 자리를 가졌는데 그는 이러한 경연대회를 아예 없애버렸습니다.

 

또한 사간원을 철거시켰는데 이는 요즘으로 따져보면 방송국이나 신문사 등의 주요 언론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성균관의 학자들을 쫓아내고 그 곳을 아예 놀이터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어떻게 놀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군주로서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했음은 분명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기타 너무 많은 폭정을 했기에 계속적으로 긍을 올리기에도 한편으로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조금만 넓은 생각을 가지고 행동했다면 그러한 불행은 없었을 텐데요. 참 아쉽지만 이 사건으로 인하여 많은 뛰어난 학자들을 잃게 되었고, 그도 오래지 않은 국본의 자리에서 쫓겨나 귀양을 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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