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의 가장 큰 실수 두 가지제갈량의 가장 큰 실수 두 가지

Posted at 2015. 11. 27. 19:34 | Posted in 역사 비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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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의 가장 큰 실수 두 가지

 

삼국지의 소설에는 뛰어난 지략가가 많으며 그 중에서 최고봉으로 제갈량을 꼽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작 실력과 노력이 모두 충족되었으나 그가 얻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있겠습니다. 그 정도로 대단했다면 왜 위나라를 치지는 못하더라도 커다란 위협에 빠뜨릴 정도로 대단한 임팩트를 왜 남기지 못했을까요?

 

물론 적벽대전에서 주유와 지략을 합쳐서 조조의 100만대군을 섬멸시킨 대단한 공을 세웠지만, 그 이후에는 촉과 한중지방을 차지한 것 외에는 그다지 내세울만한 전공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마속을 중용한 점

 

유비가 죽으면서 제갈량에게 마속을 너무 크게 쓰지 말라고 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갈공명은

유비의 조언을 무시하고 마속을 중용했는데 그는 실력에 비하여 이름값만 높은 인재 축에 속했다고 합니다.

 

나이대가 거의 비슷한 두 사람은 친구처럼 막역한 사이로 지냈고, 평소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마속에게 의견을 물어보기도 했으며 충책을 그에게 맡기는 일도 많았습니다.

 

공명은 장안성을 치기 위한 아주 중요한 기지였던 가정을 그와 왕평에게 맡겼는데 마속의 어이 없는 전술로 말미암아 결국 가정을 빼앗기게 되고 장안성을 치기에 가장 좋은 기회를 이로 인하여 놓치게 됩니다.

 

그 후로도 공명은 장안성을 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기회를 잡지 못했고, 공명이 죽을 때까지 결국 그 일을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 뼈아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 공명처럼 뛰어난 인재가 마속이라는 허풍쟁이를 그렇게 높게 평가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군요.

 

너무 정공법만 주장 했던 점

 

공명은 가정을 얻은 후에 넓은 길을 통하여 장안성을 차지하려고 했으나 그것은 시간이나 병력이 많이 소모가 되는 전략이었고, 사마의가 장안성을 수비하는 상황이 일어나기 직전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상책이었던 그 상황에서는 그것이 안정적이었을지는 모르나 오히려 실속은 부족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장량이나 한신에 비하여 조금 낮게 평가할 수도 있겠습니다.

 

위연이 주장했던 바대로 지름길을 통과하여 곧바로 장안을 치는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었으나 그것은 상대의 책략에 휘말릴 경우에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마의가 오기 전까지는 그곳에 빼어난 지략가가 없었으니 약간의 위험성을 안더라도 한번 정도 시도해보는 것이 오히려 나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결국 결과적으로 그의 평생동안 이곳을 치지 못했으니 정공법이 최선이었다고는 할 수 없겠죠.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 시대 최고의 책사로서 공명을 꼽는 데는 머뭇거릴 필요는 없겠으나 이러한 아쉬웠던 점이 있다는 것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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