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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폐비윤씨 사사사건 이야기 2016.01.26

폐비윤씨 사사사건 이야기폐비윤씨 사사사건 이야기

Posted at 2016. 1. 26. 18:53 | Posted in 역사 비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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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윤씨 사사사건 이야기

 

성종은 세종대왕을 많이 닮은 왕으로서 실제로도 학문을 좋아하고 신하들과 경연을 열어 대화하기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으나 그에게는 폐비윤씨의 사사사건이라는 좋지 못한 행적을 남겼습니다. 이것의 결과는 연산군의 폭행으로 이어졌으니 이러한 비극은 결국 성종도 한몫을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폐비윤씨의 죽음

 

이 분은 조선시대 내에서도 대표적인 악녀의 한명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치적인 이유에 의한 희생자의 상황이었다면 못내 아쉬움이 남겠지만, 당시의 다양한 증거와 역사적인 내용을 살펴보자면 중전으로서의 자격이 지극하게 부족했던 여인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윤씨는 공혜왕후의 죽음 이후에 중전으로 오르게 됩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대비나 첩, 왕에게도 좋은 인상을 준 나름대로 괜찮은 여인으로 인식되었습니다.

 

하지만 왕비가 된 이후에 태도가 많이 달라졌는데 다른 여인들과의 투기가 심했고, 다양한 좋지 못한 행동이 구설수에 올랐는가 하면, 대비나 성종까지도 그녀를 좋지 않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악행이 심해서 마지못해 결정한 것이 사가로 내좇는 것이었습니다.

 

연산군이 나이가 들면서 성종은 서서히 후대 왕에게 발생할 사건에 대해 걱정을 하면서 윤씨에 대한 처리방안을 검토하게 됩니다. 결과는 그녀가 살아있으면 왕실에 피바람이 불어올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이미 많은 죄가 있는 그녀에게 사약을 내릴 것으로 결정하게 됩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폐비윤씨의 사사사건이라고 합니다. 이때 그녀가 토한 피를 그대로 간직해두었다가 가중에 그것을 연산군에게 보여주게 되는 데 그것으로 왕실에 엄청난 소용돌이이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 서건에 대처한 연산군에 대한 비평

 

연산군은 아버지 성종을 닮아 학문이 뛰어났다고 하며, 총명하였기에 성군이 될 자격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가 세자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왕이 된 이후에는 역사상 가장 실망스러운 임금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정조의 경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할 수 있었겠지만, 결국 그가 택한 것은 원수를 값는 것보다는 훌륭한 임금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비하여 연산군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고자 했고, 그것이 완벽하게 이루기 위해서 왕실의 많은 대신들을 죽여야 했으며, 그 결과 민심을 잃은 그는 중종반정에 의하여 왕의 자리를 밀려나는 수모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두 사람의 비슷한 상왕에서의 아주 상반적인 처리는 결국 성군과 폭군이라는 역사적으로 엇갈리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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