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과 궁예의 불편한 관계의 진실은?왕건과 궁예의 불편한 관계의 진실은?

Posted at 2015. 1. 1. 17:47 | Posted in 역사 비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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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 시대에서 가장 세력이 강했고,

삼국통일을 이룩하기에 유력했던 궁예는

결국 그의 수하인 왕건에게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왕건은 포악하고 잔인한 성격의 궁예를

수하들의 권고를 받아들여서 일으킨 행위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럼, 이들의 실제관계는 어떠했을지를 한번 생각볼까요?

 

 

궁예는 생애가 아주 특별했습니다.

진골의 가문에서 태어나서 승려가 되었고,

신라 말기 혼란을 틈타서 옛 고구려의 지역에 후고구려를 건국했습니다.

 

당시 왕건의 가문은 후고구려의 중심이라 할 수 있던

송악 일대에서 강성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으나,

결국 궁예의 막강한 세력에 굴복하고 수하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때까지는 왕건과 궁예의 궁합은 착착~ 잘 맞아들어갔습니다.

역사적으로 왕건은 왕이 될 인물이라는 예언이 있어서

타인들은 궁예에게 왕건을 죽이라는 말이 있었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궁예가 후고구려에서 어느 정도 세력을 형성하자,

갑자기 이상한 행동으로 했다고 합니다.

 

스스로 미륵을 자처하고 관심법이 있다고 하면서,

죄없는 백성들을 죽이는 일까지 스스럼이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도읍을 송도의 세력가를 견제한다는 목적으로

철원으로 옮기려고 시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이 실제로 그가 행했던 행동인지

왕건을 포장해주기 위하여 궁예에게

없는 죄나 행위를 덮어 씌우려는 것인지는 파악하기는 힘듭니다.

 

철저하게 역사는 고려의 태조가 되었던 왕건을 위하여 작성되어 있으니까요.

왕건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고려의 정통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니 우리도 그의 업적을

왜곡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드라마 '왕건'에서는 궁예의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이 술을 마시면서

궁예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왕건에게는 추호의 원망이 없는 것으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던 조금은 이상한(?) 내용으로 흘러갔습니다.

 

여기서 몇가지의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1. 궁예는 실제로 역사책처럼 포악했으니 왕건의 행위는 정당했다.

2. 궁예에게 약간의 문제만 존재하였으나, 왕이 되기에는 그릇이 부족했다.

3. 궁예는 신념이나 의지가 곧은 인물이었으나,

정치적인 수완에서 왕건보다 부족하여 죽음을 당했다.

 

우리는 이 중에서 실제로 어떤 상황이었다고 할지라도

또한 궁예가 역사적으로 불행했던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왕건을 배신자로 몰기보다는

조금 더 현명하고 덕이 있었던 고려의 창시자였다고

믿고 싶을 것이고, 그렇게 되는 것이 더욱 좋을 듯 합니다.

 

그것이 궁예의 희생이 따랐다고 할지라도,

이제 고려는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소중한 역사이니까요.

저작권 : 이 글은 본인이 직접 비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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