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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고구려 건국과정과 궁예에 대한 견해후고구려 건국과정과 궁예에 대한 견해

Posted at 2016. 8. 24. 21:01 | Posted in 역사 비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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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고구려 건국과정과 궁예에 대한 견해

 

삼국을 통일했던 신라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점점 국력은 약해져만 갔고 신라인이 아닌 고구려나 백제 출신이라는 것으로 온갖 고초를 당해온 그들은 서서히 지금의 국가를 부정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는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이 과정은 그다지 길지는 않았지만, 결국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가는 역사적인 흐름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1. 후고구려의 건국과정

 

신라 말기 진성여왕 시기에는 국력이 많이 쇠약해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조세를 올리게 되는데 이로 말미암아 민심은 점점 나빠지게 됩니다.

 

 

이때 쯤에 궁예는 강원도에 있던 반란군의 한명인 양길에게 들어갔고, 그에게 받은 병력으로 많은 영토를 확장 하면서 철원을 수도로 한 후고구려를 건국하게 됩니다.

 

막강해진 병력을 이끌고 당시의 유력한 호족이었던 왕건의 부친이 다스리던 송악을 정벌한 후에 다시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게 됩니다. 다시 군마를 이끌고 강원도의 막강세력인 양길을 친 이후에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었다가 다시 태봉으로 바꾸게 됩니다.

 

또한 송악으로 옮겼던 수도를 다시 철원으로 바꾸게 되는데 점점 변덕스럽고 포악해지는 그의 모습에 실망을 한 대신들은 그를 제거하고 왕건을 새로운 왕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2. 궁예는 어떤 사람이었나?

 

신라의 왕족출신이고 승려가 되었던 그는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서서히 자신의 포부를 실천에 옮기게 됩니다.

 

당시에 실력자인 양길에게 100명의 병력을 얻어 북진을 시작하게 되지만, 점차 세력이 커지면서 결국 자신을 도왔던 양길을 죽이게 됩니다. 이것으로 야심이 아주 컸지만 자신의 욕심을 위하여 누군가를 배신하는 데에도 스스럼이 없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철원으로 도읍을 옮긴 후에 자신을 미륵으로 부르게 하고, 마음에 맞지 않는 신하들을 죽이거나 아내마저도 죽인 사실을 보면, 분명 왕이 되기에는 그릇이 작고 잔혹함이 너무 지나쳤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도읍을 짧은 시간 내에 너무 자주 바꾼 것으로 그에 대한 비용이 백성에게 돌아가는 것을 감안한다면, 정치적인 역량 면에서도 부족함이 많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그는 왕건을 아주 아꼈고 크고 작은 전투에 그를 중용함으로써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능력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죽은 것은 적군이 아닌 결국 자신이 가장 믿었던 장수인 왕건에게 당한 것이니 이 부분은 아무래도 조금 아쉬움은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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