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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종반정의 배경과 사건의 흐름 2016.02.11

중종반정의 배경과 사건의 흐름중종반정의 배경과 사건의 흐름

Posted at 2016. 2. 11. 20:33 | Posted in 역사 비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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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반정의 배경과 사건의 흐름

 

두 차례의 사화를 겪은 훈구와 사림의 신하들은 이후로 급격하게 정치적인 힘을 잃어갔고, 왕실은 연산군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에 의하여 흘러갔는데 도저히 왕으로서 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으나 그것을 말리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혹시라도 말린다면 그의 목숨이 달아날 판이었습니다.

 

결국 연산군이 생각했던 전제왕권정치는 자신을 위한 것이지 신하나 백성에게 도움이 되는 점은 전혀 었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중종반정의 배경

 

성종시기를 거치면서 조선은 바야흐로 유교에 의한 정치를 하는 국가로 거듭났는데 그 아들인 연산군은 이러한 체제에 불만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은 왕이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대신들과 대간들의 승인이 필요했으며, 모든 중요한 정책은 임금과 신하가 함께해야 한다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는 이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1. 무오사화 : 사림이 화를 당하는 첫번째 사건으로 이것은 세조에 대한 좋지 못한 내용이 담긴 사초로 인하여 발생하였습니다. 이것은 훈구와 사림의 대결구도로서 이때까지는 그가 어느 정도는 지킬 것은 지키는 군주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어느 정도의 흠집을 주는 일이 되었습니다.

 

2. 갑자사화 : 폐비윤씨의 죽음에 대한 왕의 복수로 인한 사건입니다. 이 일로서 예전에 그의 어머니가 죽음을 당했을 때 도움을 주거나 연관이 되는 자는 모두 처벌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사건은 성종이 직접 내렸던 결정이었으므로 절차가 분명했기에 다음 왕이었던 그가 그 일을 다시 떠올려서 복수하려고 했던 것은 옳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때의 처벌 방식이 너무도 잔인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서히 그에게서 폭군의 모습을 보았고, 이후로는 임금에게 충언을 올리는 신하를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3. 그 외의 광기의 발동 : 결국 연산군은 거의 절대적인 위치에 올랐지만, 그가 이후에 했던 행동들은 왕으로서의 모습은 보기 힘듭니다.

 

사냥을 하러 밖으로 나가는 것이 귀찮아서 궁궐 내에 동물을 키웠고, 전국의 미녀들을 뽑아서 그를 시중들게 했으며, 한글로 된 투서가 발견되었는데 그의 학정을 문제삼자 전국적으로 한글을 아예 쓰지 못하게 했습니다.

 

도저히 왕으로서의 행동으로 보기가 힘들었으며, 이로 인하여 백성과 신하들의 불만은 날로 커져갔습니다.

 

중종반정 사건의 전개

 

연산군의 폭정이 계속되자 서서히 그가 왕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고, 전국의 곳곳에서 반정의 분위기가 나타났습니다.

 

굳이 궁궐 내의 세력이 아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곧 왕이 바뀔 것 같은 상황에서 왕실 내의 훈구파 세력들은 진성대군을 다음 왕으로 추대하고 제각각 모을 수 있는 병력을 모아서 폭군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이로서 다음의 왕은 중종이 오르게 되고, 이때 참여했던 많은 신하들은 공신의 대열에 오르게 됩니다.

 

중종은 신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참을성이 많은 군주였으나 결단력이 부족하여 특별하게 내세울만한 업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있는듯 없는듯한 나름대로 괜찮은 왕이었다고 보면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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