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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조와 정조 탕평책의 허와 실 2016.06.15

영조와 정조 탕평책의 허와 실영조와 정조 탕평책의 허와 실

Posted at 2016. 6. 15. 16:20 | Posted in 역사 비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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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정조 탕평책의 허와 실

 

탕평책이란 당파에 상관없이 인재를 등용하는 것을 이릅니다. 영정조 시대에 주로 많이 펼쳐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의 시초는 그 전의 왕인 숙종시대부터입니다.

 

사림이 지방으로부터 중앙으로 진출하면서 이른바 'OO학파'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지금으로 따지고 보면 대학교 동문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 세력은 당파를 만들었고, 그중에서 권력을 장악한 당은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막강했습니다. 이를 견제하기 위하여 숙종은 이 제도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1. 장점

 

효종은 자신이 왕으로서 정통성이 부족해서 서인을 끌여들였고, 현종은 이로 인하여 예송논쟁이라는 왕으로서의 수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수난인 이유는 왕실의 장례에 대한 격식을 조선의 전례가 아닌 송나라의 것으로 이행하자는 대신들의 억지를 받아들여야 했다는 것이죠. 이로 인하여 임금은 나라의 커다란 결정을 해야 할 때는 항상 신하들의 눈치를 봐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숙종은 탕평책을 실시하게 됩니다. 이것은 한쪽 당파가 집권하는 것을 막는 의미가 있습니다. 한쪽만 너무 막강하면 결국 왕권이 약화된다는 이유때문입니다. 이로서 서인과 남인을 골고루 등용하게 됩니다.

 

영조와 정조도 이 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이 당시는 노론과 소론, 벽파와 시파를 대등하게 대우하게 됩니다. 이 중에서 각계의 강경파는 제거하고, 탕평책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시각을 보이는 대신을 중용하게 됩니다.

 

이로서 그전보다 임금의 권한이 강화되고, 대신들은 각 당파가 어느 정도 견제를 하면서 안정적인 정국을 이끌어가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2. 단점

 

숙종은 남인과 서인을 고루 등용하고자 했으나 결국 상황에 따라서 한쪽 당파의 편을 들어준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때 정국은 남인과 서인이 정치적인 사건에 따라서 밀려났다가 다시 돌아왔다가를 반복하게 된거죠. 결국 왕이 대신들의 싸움의 중감에서 심판을 서준것과 다름이 없겠죠.

 

영조시절에는 경종의 사사에 의하여 발생한 노론과 소론을 차별없이 등용하고자 했으나 이것도 실질적으로 계속되지는 못했습니다. 그것은 결국 사도세자의 죽음에 의해서입니다. 이 사건은 주도자는 노론과 영조이고, 결국 다음 왕인 정조시대까지 그들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탕평보다는 자신들의 막강한 파워를 키우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죠.

 

정조도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세운 대신들에 복수를 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다가는 결국 연산군과 같은 폭군이 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너무도 현명하고 어질었으며 군주로서의 야망이 너무 강했기에 결국 복수대신에 대신들과의 화해를 선택하게 됩니다. 이로서 결국은 벽파의 계속적인 집권을 허락했다는 셈이 되겠습니다.

 

결국 뜻은 좋았으나 현실적으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이상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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