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파 벽파 분립과 그들의 정치적 성격시파 벽파 분립과 그들의 정치적 성격

Posted at 2016. 7. 2. 13:01 | Posted in 역사 비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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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파 벽파 분립과 그들의 정치적 성격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사건은 정치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전에 경신환국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에서 나왔던 노론과 소론의 분리처럼 말이죠.

 

궁에서 아주 크다란 소용돌이가 한번 휘몰아치면 이렇듯 당시 정치인들은 그에 대한 입장정리에서 새로운 파벌의 분립이 이어지는 경향을 많이 보였습니다. 단지 그냥 입장차이였다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는 않겠으나 이후의 처세가 자신들의 득세에 집중했다는 것이 더 문제가 되겠죠.

 

1. 사도세자의 처벌에 대한 찬반양론으로 갈라지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악화되었습니다. 비록 부자(父子)의 관계였으나 그들은 이미 가족을 넘어선 정쟁의 대표주자로 누구 한명이 물러서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불효하고 괴퍅한 행동에 처벌을 결심했고, 그것은 불행히도 아들의 죽음에 대한 결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에 대신들은 왕의 결정에 대한 찬반양론이 나타났겠죠.

 

처벌의 찬성 : 벽파

처벌의 반대 : 시파

 

굘국 세자의 죽음으로 벽파의 정권장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또한 그것은 다음 왕이 될 정조와의 껄끄로운 관계로 이어지겠죠.

 

2. 정조의 정책에 대한 지지와 반지지의 파로 나눠지다.

 

정조가 왕이 되는 데에 가장 걸림돌이 된 것은 벽파입니다. 그들이 저지른 사도세자의 사건이 다음왕에서 일어날 엄청난 보복에 대한 두려움에 의한 처사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혹시라도 그가 연산군과 비슷한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면, 당시에 뒤주사건에 결탁된 대신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겠죠. 이에 정조가 세자에서 왕이 되는 과정에서부터 지존의 자리에 오른 후에도 사사건건 그의 의견에 맞서게 됩니다.

 

"왕을 압박하자." = 벽파

"열심히 일하는 왕을 돕자" = 시파

 

결국 사도세자를 편들었던 세력들은 자연스럽게 정조의 정책을 돕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출신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죠.

 

벽파 = 거의 대부분의 노론출신

시파 = 일부의 노론, 남인

 

이렇게 갈라지지만 대신의 가족 내에서조차도 다른 정치적 성향을 보이는 상황이 있었던 관계로

정확하게 이를 가르기는 힘들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임금으로서는 당연히 부친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해야 하겠지만, 그는 피의 군주가 되기 보다는 세종대왕처럼 역사에 남는 군주가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두 세력을 모두 껴안는 탕평책을 펼쳤다고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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