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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도세자의 사건인 임오화변의 원인 분석 2016.06.28

사도세자의 사건인 임오화변의 원인 분석사도세자의 사건인 임오화변의 원인 분석

Posted at 2016. 6. 28. 20:17 | Posted in 역사 비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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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의 사건인 임오화변의 원인 분석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서 죽믐을 당하게 되는 장면은 아마도 TV드라마에서도 끝이 없이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도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자세한 내막을 잘 몰랐지만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대략적으로 알았던 것 같네요.

 

임오화변은 정확한 내막은 아직 정확히 분석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역사서를 통한 학자들의 추측이 존재할 뿐... 저 역시도 확실히 분석하기는 어려우나 제가 아는 바대로 꼼꼼하게 분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문보다 무에 치우친 사도세자에 실망했다.

 

영조는 정부인과 후궁들 사이에서 아들을 둘밖에 낳지 못했습니다. 첫째는 어린 나이에 죽게 되고 두번째가 사도세자였습니다. 그랬기에 그의 기쁨은 대단했고 아들에 대한 사라도 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가 10세가 되기 전까지는 유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왕자는 문보다는 무에 관심을 더 많이 가졌습니다. 영조는 왕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갖추기 위하여 문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여겼기 때문에 그러한 아들의 모습에 크게 실망을 했다고 합니다.

 

이에 왕자의 학문적인 발전을 위하여 다양한 과제를 줬으나 문에 관심을 가지지 못한 그로서는 점점 그것이 부담으로 이어졌고, 이로서 부자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2. 정신적인 질병으로 부친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무시했다.

 

왕자의 나이가 어느 정도 차면서 그에게 왕으로서의 소양을 가지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대리청정을 지시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왕은 양위의 의사를 표시함으로써 아들의 정치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고, 사도세자 역시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의 정신적인 불안은 점점 켜져갔습니다.

 

그러면서 왕을 만나는 것을 꺼리기 시작했고, 같은 궁에 있으면서도 오랜 기간동안 부친에게 문안을 올리지 않은 불효를 저질렀다고 합니다. 이것은 정신적인 불안을 감안하더라도 자식으로서 불륜의 행위임은 분명하다 하겠습니다.

 

 

3. 정치적인 성향이 부친과 달랐다.

 

아시다시피 영조를 지존의 자리에 올려준 것은 노론으로서 그는 비록 탕평정책을 실시하였으나 결국 노론과의 관계는 부정하기는 힘들겠습니다. 하지만 대리청정에서 世子가 보여준 정책을 살펴보면, 소론의 잘못을 덮어주고 노론의 의견은 배척하는 경향이 컸습니다.

 

이로서 '父 = 노론, 子 = 소론'이라는 정치적인 결탁모양을 가지게 됩니다. 결국 부자관계도 원만하지 못했지만, 서로 다른 당파를 가까이 하였으므로 그들에 의한 모함이 임오화변이라는 비극을 낳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4. 다음 왕으로 세손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아들이 학문을 멀리하는 것과는 달리 손자인 정조는 어려서부터 무척 영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영조가 원하는 왕의 상은 결국 아들이 아닌 손자가 조금 더 가까웠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상황 상으로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결국 임금은 자신이 원하는 세손에게 모든 것을 주기 위하여 부득이 하게 아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태종이 세종대왕을 선택한 것과도 비슷한 과정이라고 해석이 되겠네요. 하지만 이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라 어느 정도의 추측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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