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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 서인, 남인, 북인의 형성 배경동인, 서인, 남인, 북인의 형성 배경

Posted at 2016. 3. 3. 17:52 | Posted in 역사 비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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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 서인, 남인, 북인의 형성 배경

 

조선의 역사를 살펴보면 중후기로 흘러갈수록 점점 파벌이 다양하게 나타 남을 알 수 있습니다. 대략적으로 알고 보면 이게 저거 같기도 하고 헤깔릴 수 있겠지만 전반적인 역사를 잘 이해하면 쉽게 잘 잊어버리지는 않는듯.

 

결국은 정치적인 파벌은 조선 전체를 한꺼번에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듯 합니다.

 

 

동서의 분당

 

훈구파와 사림파로 나누어지던 이전과는 다르게 선조시대에는 그동안 중앙을 장악하던 훈구파는 사라지고 사림이 대거 정계로 진출을 하게 됩니다. 결국 고려 후기부터 그들이 주장하던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그들이 바라는 시대가 바야흐로 온 것이죠.

 

하지만 사림이 집권을 한 이후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죠.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훈구파 시절이 오히려 국력이 더 강했고, 왕권도 더욱 안정적이었다고 느껴집니다.

 

시스템적으로는 물론 이 시대가 더 나았겠지만, 결국은 이 시스템에도 문제점이 많이 노출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건의 발단은 이조에서 정 5~6품에 해당하는 이조정랑직에 대해서 김효원과 심의겸의 대립이 있었고 대신들은 제각각 다른 시선으로 이들을 편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조정랑자리가 그만큼 탐났던 자리였다는 거죠. 높지는 않지만 실직적인 권한이 막강했다고 합니다.

 

이에 김효원을 지지하는 당 심의겸을 지지하는 당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도성에서 동쪽과 서쪽에 거주했다는 기준으로 나누었다고 합니다.

 

선조는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을 이해하면서 두 당파의 싸움을 가장 적절하게 이용하기 위하여 당파의 색이 짙지 않은 이이를 중용했다고 합니다. 한쪽 당파가 강해지는 것보다는 두 쪽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는 것이 왕권의 강화에 유리하다고 보았기 때문이죠.

 

이이는 동인과 서인을 오가면서 분열된 조정을 화해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서로에 대한 감정이 예전과 같지 않은 지라 그의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었고 아쉽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두 당파의 간격은 점점 멀어만 갔습니다.

 

 

남북의 분당

 

동인에는 정여립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지방에서 반역을 도모하고자 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서인을 대표하는 정철은 그와 관련된 자들을 처단하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동인의 세력은 크게 위축됩니다.

 

얼마 후에 정철은 왕에게 세자로 광해군을 추천했는데 선조의 마음은 그와 달랐기 때문에 미움을 사게 됩니다. 이를 눈치챈 동인들은 정철을 정계에서 내쫓으려 하는데 여기서 그를 죽이자는 주장과 그냥 귀양을 보내자는 주장으로 나누어집니다.

 

여기서 강경파는 북인, 온건파는 남인으로 분류가 됩니다.

 

알다시피 북인은 사도세자의 집권과 함께 힘을 쓰게 되는데, 인조반정 이후에는 서인들의 세력이 막강해지면서 조정은 한동안 서인과 남인의 대결구도로 흘러가게 됩니다.

 

분당은 서로가 견제하면서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막는데 이로운 점이 있었지만,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등의 큰 전투에 적절히 대비하지 못한 것으로 보자면 오히려 해로운 점이 더 많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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