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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려시대의 근친혼의 실행과 폐지 2016.11.11

고려시대의 근친혼의 실행과 폐지고려시대의 근친혼의 실행과 폐지

Posted at 2016. 11. 11. 16:43 | Posted in 역사 비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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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근친혼의 실행과 폐지

 

고려시대의 사극을 보다 보면 가끔씩 이상한 장면을 보기도 합니다. 그것은 사촌 간이거나 이모나 고모와도 결혼을 하는 거죠.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와 비교해보면 도저히 우리나라에서 그런 풍습이 있었을 것이라고는 상상이 안되죠.

 

이러한 풍습은 삼국시대에도 실행이 되고 있었고, 중국의 문화가 들어 오기 전부터 토속적으로 이어오던 풍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 신라시대 때는 당연한 풍속도였다. 

 

삼국시대에는 신라가 유독 근친혼이 많이 행해졌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골품제로 이어지는 신분제도의 폐해라고 할 수 있겠죠.

 

만약에 다른 두 신분이 결혼을 하게 되면, 더 낮은 신분의 계급을 따르는 것이 그때의 법이었으니 왠만해서는 동급의 신분과 혼인을 하는 것이 계급하락을 막을 수 있는 길이 되겠죠. 특히 왕족이었던 성골이 진골과 결혼을 하면, 그 자식은 왕이 될 자격을 잃게 되므로 어쩔 수 없이 근친 간의 겷론이 성행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2. 고려시대에도 근친혼이 성행했던 이유는?

 

고려를 건국했던 왕건은 지방호족들을 포섭하기 위해서 결혼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호족들의 딸을 아내로 맞아 들이게 되는데 부인의 수가 무려 29명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왕건이 죽은 이후에는 왕자의 수가 너무 많아서 왕위 쟁탈이 굉장히 치열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눈여겨 볼 것은 임금이 된 이후에도 호족들에게 눈치를 봐야 할 만큼 중앙의 세력이 약한 상황이었습니다.

 

광종은 왕위에 오른 후에 호족들을 견제하기 위한 많은 정책을 세웠고, 외척세력이 자라는 것을 아예 차단하기 위하여 같은 왕씨끼리 혼인하는 정책을 이어가게 됩니다.

 

또한 당시의 상속제도는 자식에게 골고루 재산을 나누는 제도가 있었으므로, 다른 신분에 재산을 뺏기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는 설도 있습니다.

 

 

3. 원나라에 의하여 폐지

 

원나라가 우리나라를 지배하게 되면서 동성 간의 혼인을 금지시킵니다. 만약 지키지 않으면 벼슬을 하지 못하도록 했으므로, 이러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귀족출신들은 이때부터 동성혼을 줄여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조선이 건국 된 이후로는 성리학을 중시하는 국가체제를 유지하였으니 동성혼은 사람으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되는 폐륜으로 여기게 됩니다.

 

유교사회는 오히려 사회질서를 너무 중시하는 단점이 있었으나 그전까지 있었던 악습을 고치는 장점도 존재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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