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사화 결과'에 해당되는 글 1건

  1. 갑자사화 원인과 결과 살펴보기 2016.02.01

갑자사화 원인과 결과 살펴보기갑자사화 원인과 결과 살펴보기

Posted at 2016. 2. 1. 21:49 | Posted in 역사 비평하기
반응형

 

갑자사화 원인과 결과 살펴보기

 

연산군의 시대에 일어난 두번째의 사화가 바로 갑자사화입니다. 조선시대에 사림이 화를 당하는 사건은 4회 일어나는데, 그것이 이 시대에 2회나 발생한 것으로 보아 얼마나 불안정하고 폐해가 심했는 지를 짐작케 합니다.

 

아마도 TV 사극에서 이 시대를 본 경험이 있다면, 대략적인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는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사건의 원인과 경과

 

 근본적인 원인 : 폐비윤씨의 죽음에 대한 복수

 

성종 시절에 연산군의 모친이 중전에서 폐서인이 되고, 나중에 그녀의 아들이 왕이 된 이후의 후폭풍을 막기 위하여 당시 조정에서는 지체가 높은 신료들이 모여서 의논을 했는데, 그 결과로 윤씨를 죽여서 후환을 없애자는 것이었습니다. 성종 역시 그녀를 몹씨 싫어 했기 때문에 그녀의 죽음보다는 오히려 훗날의 안정을 택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연산군은 그때 모친의 죽음과 관련된 자들에 대하여 복수의 마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사건의 경과

 

윤씨에게 사약을 전달했던 이세좌는 술자리에서 왕의 용포에 술을 떨어뜨려 귀양을 보내고 결국 자결케 했습니다. 지방에 있던 홍귀달에게 딸을 궁에 보낼 것을 명령했으나 이를 어겨서 그를 불러 책임을 묻게 합니다.

 

이후로 윤씨의 죽음을 모의했거나 반대하지 않았던 신하들과 대간들을 처벌했습니다. 이때 죽었던 신하들의 수는 239명으로서 이 중에는 정승도 포함되어 있어 상하에 관계없이 그의 모친에 해가 된 이의 목숨을 모두 해쳤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갑자사화의 결과

 

무오사화 때는 대신과 왕이 힘을 모아 대간을 몰아냈다면, 갑자사화는 전체적인 양상이 많이 다릅니다.

 

왕과 그의 행태에 이득을 얻으려는 신하 VS 이에 반대하는 대신과 대간의 대립양상으로 이어졌는데 결국 연산군은 거의 홀로 고립된 상황에서 많은 수의 신하들을 처벌하면서 그의 왕권을 극대화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일어나는 동안 엄청난 수의 신하들이 죽어갔고, 이미 죽은 신하들까지 무덤에서 시체를 꺼내어 처벌했습니다.

 

상승된 왕권으로 백성들에 대한 정치를 하기보다는 방탕한 생활과 모자라는 국고 모으기에 바빴으니 신하들이나 백성들의 원성은 나날이 커져 갔습니다.

 

이에 진성대군(훗날 중종)은 폭군에 의해서 지쳐있는 백성을 위하여 반정을 일으키는데 성공하여 연산군은 폐위하게 됩니다.

반응형
//